아는 지인의 집에 얹혀살면서 한 곡만이라도 팔리길 바랬던 방시혁의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하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의장인 방시혁씨가 드디어 대한민국 10대 주식부자란 왕좌에 앉았다는 소식입니다. K-Pop을 널리 알리겠다며 무릎쓰고 달려왔던 과거를 지나 이제는 명실상부한 케이팝의 대부로 자리잡은 방시혁씨는 음악계를 뛰어넘어 자본시장에서도 k팝때의 아성을 넘어설것인지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방시혁은 누구인가?
1972년 8월9일 서울에 태어나서 대한민국 다섯손가락안에 꼽히는 명문고등하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인문대학 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떄부터 밴드활동을 통해 음악인의 꿈을 키워왔고 , 대학교에 입학한 뒤 작곡가로 데뷔하면서 여러 경연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했습니다. 이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수석 작곡가를 역임했고 임정희, 에이트, 2AM, 방탄소년단의 음반을 프로듀싱해왔습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 정보를 그 누구보다 발빠르게 전달하는 마켓포인트에 의하면 15일 이날 빅히트는 4.44%내린 25만 0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공모가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공모가의 두 배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반면 최근 상장했던 SK바이오팜이나 카카오게임즈는 첫날 공모가의 두배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모습을 보인것과는 반대로 약간 아쉬움이 남죠.
방시혁 의장의 지분가치는 정말 크게 치솟았습니다. 가진 주식만으로는 약 1200만주가 넘는데 이날로 지분가치가 3조 1933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보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재벌닷컴이 집계한 국내 상장사중 주식재산 순위 BEST 10을 가려뽑은 것인데 방시혁씨는 8위에 랭크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로얄 재벌클래스들 사이에 방시혁씨의 빅히트 상장이 위치해있는것을 보면서 BTS의 저력을 다시한번 느껴봅니다.
빅히트 방시혁의 '와신상담'(臥薪嘗膽)
2005년 홀로 빅히트라는 레이블로 독립한 방시혁씨는 R&B와 발라드로 유명한 혼성그룹 에이트를 통해 다시 재기를 해나갔으나, 2012년 배출했던 걸그룹 '글램'의 다희가 이병헌 협박 혐의로 실형선고를 받으면서 데뷔 3년만에 해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 2013년 , 방탄소년단이 드디어 데뷔를 합니다. 데뷔를 한 당시 소녀시대와, 엑소 등의 기타 그룹들의 후광에 가려져 그 빛을 보지는 못했다가 '쩔어' 등의 곡이 히트를 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그룹 아이돌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합니다.
BTS 방탄소년단의 성공비결
전문가들은 BTS 방탄소년단의 성공비결로 방시혁씨의 리더십을 꼽고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아이돌들같은경우 소속사에서 제제를 많이 가하거나 폐쇄적인 행동반경에서의 움직임을 강요하는 반면, BTS 멤버들에게는 자유로움을 선사하면서 멤버들은 이를 통해 SNS에서 적극적인 팬들과의 소통으로 다른 아이돌들과의 차별성을 보였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야 말로 방탄소년단과 방시혁씨를 지금의 거물로 성장시켜준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BTS는 한번의 한류의 성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돌그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선 세대의 한류열풍 주역들은 소속사의 제제 등 여러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팬들과의 소통 창구를 스스로 마련할수도 없었을뿐더러 그들만의 신비감을 꾸준히 유지하고 보여줘야했기에 열고싶었던 창문을 굳게 닫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씨는 기존의 한류 프레임을 완전히 박살내고 방탄소년단과 팬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하여 더 가깝게 만들었고 연예인과 팬의 관계가 아닌 친구 對 친구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가수 에일리씨가 배그 및 각종 게임 유명 BJ인 뜨뜨뜨뜨와 같이 방송하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같이 듀오로 게임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영상으로 실어올리기도 했구요. 이제 우리는 연예인들과 같이 방송도 하고 소통도 하면서 온라인상으로도 알고 지낼 수 있게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한류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해야되겠다고 느낀 노력형 천재 방시혁씨의 선구안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