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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 10주기 그 날...

이슈키오스크 2020. 11. 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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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3일 월요일은 연평도 포격 1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북한의 포격 도발속에서 활약했던 대한민국 국군 용사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더 故 서정우 하사, 故 문광욱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나무위키)

연평도 포격 사건이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한반도의 서해 5도중 하나인 대한민국 연평도를 북한군이 선전포고없이 갑작스레 포격한 사건으로, 그 전의 도발과는 완전 다르게 민간인 거주지역을 포격했고, 군인은 물론 민간인 사망자까지 나온 상황이었기에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로 휴전이 깨질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북한군은 2010년 11월 23일 오전부터 호국 훈련을 실시한 대한민국 국군에게 실질적인 침략행위라고 항의를 하였고 대한민국 국군은 기존의 훈련이라고 통지문을 보냈다. 게다가 이후 기사에 따르면 호국 훈련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사격훈련이었다고 한다. 즉 그냥 핑계였던 것입니다. 애초에 포격을 작정하고 적당한 구실을 붙였다는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다시말하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도 연평도 포격 사태는 결코 피할 수 없었던 것이죠.

 

사실 단순히 대한민국만을 상대한다면 구실 그딴 거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은 어디까지나 북한이 선제 공격 당한 상황에서 발발하는 전쟁에만 개입하도록 약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북한이 선제 공격 당했다고 보도하는 매체는 당연히 북한 내 매체 뿐입니다. 중국 또한 북한이 먼저 포격한 것으로 보도하였습니다.

 

포격 3시간 전 정보참모부의 수시첩보보고로 사전에 포사격 징후를 포착해 청와대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등 20여 개 기관에 알렸음에도 당시 정부와 군 지휘부가 이를 묵살했던 것입니다.

 

사건발생 

11월 3일 오후 2시경, 연평도에서는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으며, 굉음과 함께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당시 하교하던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은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었던 것이죠. 그 때는 연평어린이집의 원생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군인의 안내를 받아 대피소 안으로 피신했고 , 이후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있는 대피소에 모여서 컵라면을 먹고 그곳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연평도에서는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텔레비전이 나오기 시작했고, 전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적의 포격임을 파악하자 포병들은 자주포들을 일단 포상 내부로 숨기고 나머지 해병들도 대피호로 대피하였으며, 14시 41분경 적의 포 공격이 멈추어 잠잠해지자 k-0 자주곡사포 3문을 포상 밖으로 다시 끌어내어 14시 47분경부터 대응사격을 시작했습니다.

 

 

 

 

 

k-9 자주곡사포의 뒤에 보이는 화염에 대해 일각에서 열압력탄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진의 화염은 대구경 열압력포탄에 의한 화염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작으며 ,열압력탄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위로 피어오르는 형태의 화염을 내지 않습니다. 포상에 있던 타이어가 타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는데, 실제로 2011년도 진지보수 공사 때 타이어를 제거한다는 소리가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타이어가 불에 탔든 아니든, 실제로 타이어가 타는 우려가 있어 최전방 부대를 중심으로 타이어를 모두 제거하고 불에 타지 않는 것으로 전량 교체 되었습니다. 해당 사진에 대해 국방부는 장약에 불이 붙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당일 오전에 미리 예정된 호국 훈련 계획에 따라 정상적으로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대한민국 해병대 연평부대도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남쪽 바다를 향하여 사격훈련을 했으나 북한은 이를 남한 측 도발로 규정하고 오후 14시 34분 대연평도에 기습적으로 포탄을 발사했고 남한 역시 14시 47분부터 이에 대응사격을 감행했습니다. 북한군의 초반 포격에 한국군은 2대의 k-9 자주곡사포가 손상되었고 한국군은 남은 3대의 k-9 자주곡사포로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무도의 북한군 기지를 향해 50발의 보복 사격을 가했습니다. 30발쯤 사격할 때 1대를 긴급수리해서 4대를 투입, 이후 북한이 다시 레이더 기지를 노리고 개머리 반도에서 포격을 개시하자 한국군은 다시 30여발의 포를 개머리 반도에 발사했습니다. 교전이 중지될 때까지 북한군은 총 170여 발의 포를, 한국은 80여 발의 대포병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합동참모의장의 발표에 따르면 오후 3시 41분에 포격은 일단 종료되었다고 합니다.

 

이 공격에서 북한군이 방사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122mm와 240 mm 방사포 로켓탄 일부가 연평도에서 발견되었다는데, 이는 북한군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이번 공격을 준비했다는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240mm 방사포는 해안포부대에 배치되지 않은 군단급 지원화기이기 때문입니다.

 

북한군의 포탄 중 절반 정도는 바다에 떨어졌고 나머지가 연평도에 떨어졌습니다. 발견된 탄피로 볼 때 사용탄은 130mm과 75mm 포와 방사포탄, 군측에선 앞의 두 개로 영점 조준을 하고 방사포를 메인으로 떄려버린 거 같다고 진술합니다. 문제는 오차도 매우 크고 지상에 떨어진 것 중에서도 불발탄이 202여발이나 되어 군이 수거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지상에 낙하한 것만 불발탄 비율이 약 30%가 넘어간 셈이죠. 지상에 유효타를 본 것도 30%정도. 그것도 수도권을 노리는 4군단에서 미리 준비해놓고도 이렇다는 것입니다. 즉 북한군의 탄약 관리와 제대로 된 포탄 생산보급이 극히 부실한 것으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짱!

 

그리고 연평도 지상에 떨어진 것들 중에 불발탄이 아니라 제대로 폭발한 포탄들도, 적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아군 포대쪽이나 군 시설에 정확히 떨어진 건 별로 없고, 대부분이 엉뚱한 민간인 지역 여기저기에 마구잡이식으로 산만하게 떨어졌습니다.

 

한편 포격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군이 14시 38분, 급히 KF-16, F-15K와 해군 함정들을 보내자 북한은 MIG-23 3대를 출격시키고 경비정도 출동시켜 공중과 해상에서도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를 볼 때 북한은 확전이 될 것도 각오하고 이번 도발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당시 대포병 사격 최초대응사격이 13분 이상 걸려, 평소 군 당국이 공언하던 5분 이내 대응사격에 비해 지연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K-9 자주곡사포 6문 전체가 사격훈련 중 사태가 발생하여 지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차 대응 사격 역시 상당히 늦게 이뤄졌으나, 정밀한 타격을 위해 사격 원점을 찾는 데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군 당군은 해명했습니다.

 

초기 추정치였던 50~200발의 포탄에 대응해 일반적인 3배 대응 원칙으로 반격했으면 150~600발을 발포했어야 했는데, 80발 정도만 대응사격한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급작스럽게 선제공격을 당한 사건임을 감안할 필요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격한 K-9자주곡사포 4대는 오전에 훈련을 하여 탄약이 부족했고 2대는 초기 포격으로 파손당하고 전력에서 이탈, 나중에야 1대가 긴급수리로 복귀했고 1대는 처음부터 불발탄으로 인해 물리적으로도 즉각 응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사건 당시 연평도 일대에 정확히 몇 발이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현장지휘관이 임의로 판단한 적 포탄사격수 계산에 의한 반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도발이 자나고 나서야 우리는 북한이 200발을 쐈다는 것을 알고 질타를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해병들이 정확하게 알 방법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해병대가 설사 포탄이 200발 이상이 떨어진 것을 정확하게 알았어도 600발을 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연평도는 섬이다 보니 언제 포탄이 다시 보급될지 알 수가 없는게 현실입니다. 사용된 포탄은 어떻게든 보급을 다시 해놓으면 된다지만 더 중요한건 포병 입장에선 이것이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도발인지 아니면 한국전쟁의 재발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즉 현장에 있던 해병대로선 북한군이 다음 날도 계속 포격 도발을 해올지 아니면 한 시간 포격하고 끝낼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확전이 결정난 상태라거나 아니면 지휘부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포탄을 대량 소모하겠다는 판단을 하기 매우 힘듭니다.

 

 

서울의봄 전두광 노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