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려거란전쟁...3차에 걸친 거란과의 대전쟁

이슈키오스크 2023. 12. 1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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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5N8tqVfubMA

 

당나라

오대십국시대 

거란 발해 멸망 정안국 세움

후진의 석경당 황제 오르기 위해 거란족을 끌어들임

아버지의 나라로 모시고 조공을 바치겠다고 

미친 제안 중국북부 연운16주를 거란에게 넘겨주겠다 

엄청난 생산력과 인구수 알토란 알짜배기같은 땅 

만리장성 이남 중국 통일을 노릴수도 있음 5만의 지원군 파견 후진이 거란을 배신

후진 멸망. 연운 16주 

중원다스리기에는 역량이 부족 동아시아 최강대국으로 성장

한반도에서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건국

발해 유민뿐만아니라 여진족 거란족까지 모두 받아들임 

당시인구 600만에서 700만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

고구려영토를 되찾으려고 함 평양인 서경을 발판

거란의 존재는 눈엣가시 왕건은 거란을 철저히 적대시함

942년 낙타 50마리 선물한 거란 사신을 유배보내고 낙타는 굶겨죽였다

처음부터 순탄치않았다 큰 충돌은 없었음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송나라를 상대 

내정을 안정시키는데 집중할 수 있었던 고려 

왕과 호족간의 

정략결혼 호족들간 근친혼이 성행 왕족사이

이복남매 사촌끼리 결혼하는건 흔했지만 친남매끼리는 금지

유학의 영향으로 근친혼풍습은 사라짐 사병까지 거느리고있던 호족들

왕권강화가 급선무 고려4번째왕 광종

호족 신하들 대거숙청 15년에 걸친 공신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목숨을 부재

팽팽했던 힘의 균형은 왕실로 기울어짐 성종 6대왕 재위기간 981년~997년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음 성종의 여동생들

헌애왕후 헌정왕후 천추태후 졸지에 과부가 됨

훗날 목종 . 재혼에 관대했던 고려 왕후였다보니 재혼은 불가능 

스무살도 안된 나이 김치양 애인 중 행세를 하면서 헌애왕후와 ,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 

불륜 발각되자 성종은 화를내면서 왕욱 ,경상남도 사천으로 유배보냄

대량원군을 낳았다 훗날 현종 

양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라나게되는 현종 

오대십국시대 송나라와 거란간의 타이틀매치 북벌을 시도헀지만 거란에게 대패당함

소태후의 지도력에 있었다 경종을 대신해 섭정 시작 . 거란의 실질적 통치자

소손녕 소배압 뛰어난 인재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송나라 북진 저지 고려 거란 사이 완충제 역할하던 정안국 멸망

993년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 제1차 고려거란전쟁 여요전쟁 

평양 비축해둔 곡식 대동강에 버려라

서희가 나서서 양식은 백성의 생명을 지키는 것으로 설령 적에게 빼앗긴다 할지라도 강물에 던져서는안된다

국토를 떼어 적에게 주는 것은 만세의 치욕입니다.

3대가 정승을 지낸 명문가문출신 엘리트중에 엘리트 장원급제

추세 지켜보자는쪽으로 기울어짐 누구를 사신으로 보낼지

자원해서 사신으로 감 . 안융진에서 거란군 상대로 승리했다는 소식 

고려군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 고압적인 태도 . 큰 절을 해야한다면서 기싸움 시작

협상자리에서 숙이고 들어가는건 , 절하기를 거부한 서희

서로 맞절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고려와 전면전 펼칠 생각이 없었다. 송나라라는 강국이 거란을 위협

송나라와 고려가 손을 잡고 거란을 공격. 눈치 빠른 서희가 그의 의도를 모를리 없었다

너희 나라는 신라의 뒤를 이었고 고구려땅은 우리땅인데 ~

양국 사이에서 도적질하면서 길을 막고 있으니, 

일단 조공은 바침. 강동6주를 차지함 흥화진 귀주 장흥진 귀화진 곽주 안의진 고려의 새로운 북방 방어선

섭정 시작 천추전 거처 , 귀양가있던 김치양을 불러들였다. 높은 관직 차지한 김치양 매관매직 많은 부를 축적

효심이 너무 깊은 목종, 후사가 없다는 것이 문제. 유행간 유충정 동성애자였던 목종

주지 스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화재로 궁궐이 불탐. 강조 

목종이 죽고 간신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어서 개경으로 돌아간 강조

왕명, 개경 입성한 김치양과 유행간을 처단 

목종을 폐위시키고 대량원군을 왕위에 앉힘

1009년, 

최북단 성인 흥화진 

 

1018년 강감찬 강민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