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영웅 고정운, '뭉쳐야 찬다' 출연...고정운은 누구인가?
13일 방송될 JTBC '뭉쳐야 찬다'에서 아시아의 적토마 고정운과 신태용이 스페셜코치로 등장해 한판 대결을 펼칩니다.
뭉쳐야 찬다 의 주인공격인 '어쩌다FC'팀은 고정운과 신태용을 코치로 모시고 특별훈련에 들어가게되는데요.
출연진인 전설들은 각각 8명씩 고정운팀과 신태용 팀으로 나뉘어 훈련과 스페셜경기까지 8대8로 나뉘어 진행합니다.
신태용은 얼마전 국대를 맡았을 경력이 있는 아주 유명한 분이죠
그렇다면 고정운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요?
고정운은 누구인가?
(출처: 나무위키)
이름 : 고정운
출생 : 1966년 6월 27일 , 대한민국 전라북도 완주군
국적 : 대한민국
신체 : 키 177cm
직업 : 축구선수, 축구감독
선수 : 일화 천마 축구단/ 천안 일화 천마, 세레소 오사카, 포항 스틸러스
감독 : 선문대학교, 전남 드래곤즈, FC 서울, 성남 일화 천마, 풍생고등학교 , FC 안양, 김포시민축구단
국가대표 : 77경기 10골
고정은은 대한민국 축구선수 출신이자 감독으로 축구 해설가까지 역임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FC안양 감독을 맡았었구요. 성남일화 천마와 K리그의 전설로 알려진 분입니다. 현역시절 빠른 움직임 덕분에 '적토마'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습니다.
고정운은 전북 완주군 출신으로 이리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9년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됩니다. 입단 첫 해 주전자리를 꿰차며 31경기 4골 8도움을 기록하며 그 해 신인왕에 등극합니다. 왼쪽 측면에서 저돌적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마치 적토마를 연상케 했고 곧 그의 별명이 됩니다. 일화에서 9시즌을 보내며 프로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합니다
1991년에는 40경기에 출전해 13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득점커리어에서 최고 기록을 세웠고 , 그 해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습니다. 1994 시즌은 고정운 선수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21경기에 출장해 4골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작년 시즌에 뒤이은 팀의 리그 2연패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그 해 리그 MVP와 도움왕, 베스트 일레븐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1995년과 1999년에도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는 등 그의 활약은 꾸준했죠.
1997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세레소 오사카에서 2시즌 동안 29경기 3골을 기록했습니다.
1998년 포항스틸러스로 이적하며 국내로 복귀하게 됩니다. 포항에서 첫 시즌인 1998년 16경기에 출장해 5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게되는데요. 특히 9월 5일 역대 최초로 40~40 클럽 (40골 40도움)에 가입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99년에도 21경기 9골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출전기간이 줄어 2000년에는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2001년에도 4경기 출장에 그치는 등 결국 8월 5일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고정운의 국가대표 시절
대표팀에서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지만, 대학교 재학기간 내내 단련한 런닝 크로스는 대표팀 역대 측면자원을 통틀어서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했습니다. 대표팀 후배 중에선 설기현 정도를 제외하면 비견될만한 선수가 없었죠.
1989년 5월 23일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예선 싱가포르전에서 A매치에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고, 1994 FIFA 월드컵 미국 본선 엔트리에 포함되어 10번을 달고 조별리그 전경기에 풀 타임 출전했습니다. 미국 월드컵 당시 기존의 장점이었던 전진 돌파력에 전술적인 움직임까지 크게 향상된 모습으로 스페인전에서 상대팀의 핵심 수비수였던 미겔 앙헬 나달을 퇴장시키기도 하는 등 예선 3경기에서 전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으며, 2골을 넣은 홍명보와 함께 해외진출이 가장 유력한 선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독일의 우측을 헤집고다녔다시피했는데, 골에 가까운 슈팅 두 차례 포함 끊임없는 돌파, 크로스를 작렬시키며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이후 활약을 이어가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과 1996년 AFC 아시안 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합니다. 결국 소속팀 일화에서의 활약과 더불어 국대 에이스로 쌓은 입지로, 한국인 최초 K리그 출신 J리거로 세레소 오사카에 영입됩니다.
이후 조금씩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고, 1998년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 엔트리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차범근 호의 기본적인 골격은 고정운과 서정원을 양 날개로 두고 백업으로 이상윤과 김대의를 사정에 따라 교대로 기용하는 것이었는데, 2차전인 우즈베키스탄전까지도 사실 고정운은 평소처럼 상대 측면을 초토화시키다시피 하며 거의 골에 가까운 슈팅들을 선보였으나 , 하필 그의 백업인 이상윤이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며 존재감이 묻혔고, 이후 3차전인 한일전에서의 역대급 실책으로 인해, 이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내내 극심한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당시 지역예선에선 최용수 다음가는 맹활약을 한 고정운의 대체자원인 이상윤의 상승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지션 경쟁에서 밀린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