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 해상에서 불법체류자 2명 검거...욕지도란 어떤 곳인가?
연안자망 어선에 승선해 일하던 베트남 국적의 불법체류자 2명이 해경에 붙잡혔습니다.
통영해양경찰서는 지난 1일 오후 10시경 경남 통영 욕지면 갈도 남방 6.1 해리해상에서 베트남 불법체류자 선원 2명을 붙잡았다고 밝혔습니다.
욕지도는 어떤 곳인가?
(출처: 나무위키)
욕지도는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위치한 섬으로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욕지면의 중심이 되는 섬이자 가장 큰 섬이며 대한민국에서 36번째로 큰 섬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섬 면적은 12.619제곱키로미터, 주민 수는 약 2000명에 달합니다. 본섬 욕지도 외에도 우도, 연화도, 두미도 등 유인도 9곳과 무인도 40여 곳 등 부속도서 40여 곳이 있습니다.
욕지도의 역사
예전에는 녹도라고도 불리었으며 욕지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것은 조선시대 때로 조선 초기에는 욕질도라고 하였으나 이후 욕지도로 이름이 변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00여년 전에 한 노승이 시자승을 데리고 연화도의 상봉에 올랐는데, 시자승이 도를 묻자 "욕지도 관세존도."라고 말하며 이 섬을 가리킨 데에서 '욕지도'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비슷하지만 다른 설이 있습니다. 욕지도의 지명은 단순히 욕지도와 세존도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섬들, 연화도 , 두미도 등의 섬들을 연계할 때 비로소 답이 풀린다는 설. 이 근처 섬들은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이라는 불경 구절을 따서 각각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해당 구절의 뜻인 "연화세계를 알고자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부처님께 물어보라"라는 뜻이라네요
남북국시대부터 고자군에 속하였으며 임진왜란 직후 이 지역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면서 주변 해역이 통제영에 속한 변방 수색 및 정박처가 되었습니다. 이후 조선 말기에는 왕실 궁 내부의 명례궁으로 잠시 직속되기도 하였는데요. 1900년 진남군 원삼면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후 1909년 용남군 원삼면, 1914년에 통영군 원량면으로 편입되었으며 광복이후 1955년 욕지면을 신설하면서 통영군 욕지면에 자연스레 소속되었습니다. 1995년 통영군이 충무시와 통합되면서 통영시로 승격됨에 따라 이곳도 통영시 욕지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침입 등으로 공도 정책을 실시하여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다가 고종 때부터 주민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몰려와 한때 섬 인구가 2만명까지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인구가 줄어들어 2016년 현재는 2300여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욕지도 지리
섬의 전체적인 지형은 매우 가파르며, 구릉이 발달하여 경지 면적이 협소하고 해안가는 침식에 의한 해안절벽이 발달되었습니다. 당연히 평지가 별로 없어 농사 짓기 좋은 땅이 아니므로 주민들은 밭농사를 많이 하는데 주로 고구마를 많이 재배합니다. 섬의 최고봉은 섬 중앙부의 천황산으로 높이는 약392m입니다. 동서로 능선이 길쭉한 산인데 중간 부분에 깊숙한 만이 있어 천혜의 항구 지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말기까지 공도정책이 이루어졌음에도 수군 주둔지 역할은 계속 한 듯 보입니다. 현재는 만에서 주로 고등어를 양식한다고 하네요